백인제 가옥

북촌 가회동에 위치한 백인제 가옥은 근대 한옥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제강점기 한옥입니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460㎡의 대지 위에 당당한 사랑채를 중심으로 넉넉한 안채와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가장 높은 곳에는 아담한 별당채가 들어서 있습니다.

서울시 민속문화제 제22호인 백인제가옥은 종로구 북촌(가회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1913년 건립된 근대 한옥으로 지난 2009년 서울시가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유족으로부터 인수 후 보수공사를 거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건축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 연출한 역사가옥박물관입니다.


이 사랑채 정원은 백인제 가옥의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건립자 한상룡은 정원가꾸기에 관심이 많아서 정원을 몸소 가꾸었다고 합니다. 그는 1913년 건립시에 사랑채에는 취성각聚星閣이라는 당호를 붙였습니다. 역대 총독 등을 초대하여 낙성연落成宴을 벌이고 나서, 1920년 1월에는 자신의 저택 취성원聚星園에 유력한 금융인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고 하여, 가옥 전체와 정원의 이름을 취성원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07년 경성박람회 때 서울에 처음 소개된 압록강 흑송(黑松)을 사용하여 지어진 백인제 가옥은 동시대의 전형적인 상류주택과 구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를 별동으로 구분한 다른 전통한옥들과는 달리 두 공간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일본식 복도와 다다미방을 두거나 붉은 벽돌과 유리창을 많이 사용한 것은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것입니다. 또한 사랑채의 일부가 2층으로 건축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전통한옥에서는 보기 힘든 백인제 가옥만의 특징으로 이곳에 특별함을 더해줍니다.

 

정원 동쪽 끝 담장을 따라 별당채로 접근하는 작은 길을 오르면 별당채에 도달합니다. 별당채는 이 집의 주인들이 애용하는 개인적인 휴식공간이었습니다. 백인제가에서 가장 높은 곳이면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아담한 별당채는 북촌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입니다. 아마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았던 건립당시에는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2칸짜리 방에 진입을 위한 툇마루와 높은 누마루를 붙였고, 방바닥과 누마루 사이에는 약 50cm의 고저차가 있어 누마루에 올라서면 북촌지역과 집안 경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정원을 통해 진입하는 길 외에 별채 쪽으로 난 일각문으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일각문이 있는 얕은 담장은 현재 일월문 담장으로 조성되었으나 이전에는 시멘트로 지은 담장이 있었습니다. 건립 당시에는 시멘트 재료가 없었는데, 후대에 새롭게 만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채 마당 |  서까래나 건물부재를 보시면 검은 빛이 나는 부재들이 보입니다. 백인제가의 주 건축재료는 압록강 흑송黑松입니다. 압록강 흑송이라는 말은 수종의 이름은 아니고 목재의 집결지가 압록강이어서 붙인 명칭입니다. 조선시대 한옥의 주 건축재료는 홍송이나 적송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한반도 북부에 서식하는 흑송은 만주흑송이라고 해서 만주를 비롯한 압록강 주변에서 자라는 데다가 목질이 무른 편이라 많이 사용하지 않았는데, 백인제 가옥에서 주 건축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점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압록강 지역의 만주 흑송이 처음 소개되었던 1907년 경성박람회의 평의원이 건립자 한상룡이었고 이것이 흑송을 건축재료로 사용한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정원에서는 당당한 사랑채를, 중정에서는 넉넉한 안채를, 그리고 후원에서는 아담한 별당채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백인제 가옥은 우리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한 자리에 모인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백인제 가옥은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한성은행이 소유했던 시절에는 천도교 단체가 가옥을 임차하여 지방에서 상경한 교도들의 숙소 겸 회합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의 나이로 조선중앙일보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1944년 이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하였으며,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9년 서울시에서 인수 후 문화재 개·보수 공사를 거쳐,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체험 공간으로 조성하여 2015.11.18 역사가옥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안채영역은 안대청과 아랫대청 뿐 아니라 실내복도로 쓰인 툇마루까지도 모두 전통적인 우물마루로 구성된데 반해 사랑채는 툇마루 복도뿐 아니라 사랑대청까지도 모두 장마루를 적용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일본에서 보편적인 장마루를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연회를 위해 방문한 일본 고위인사들에게 친근한 공간으로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건립 이후 총독 등을 초대한 오찬회가 이곳에서 열렸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사랑방을 정원 쪽으로 대청을 두고 좌우에 툇간을 두어 외부와 공간적으로 분리시켰고 배면에는 실내복도 역할의 툇간이 있어, 결과적으로 사면에 완충적 공간을 가진 독자적 성격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방의 구조는 일반 한옥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궁궐의 침전이나 운현궁 등에서 보이는 특징으로 사랑채에 높은 품격과 가치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및 소개 자료 | 서울시, 서울역사박물관